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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교

필리핀 양한갑선교사님 미얀마선교소식(1,2,3)

유대식2013.05.07 17:42조회 수 684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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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 선교통신 68호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Chin State 집회를 위한 특별 기도

미얀마에 4월 28일에 도착해서 그 다음 날 메얀청으로 이동해서 사역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양곤으로 돌아온 저에게 아담목사는 벅찬 Chin State 집회 일정을 말해주었습니다.

5월 1일(수) 비행기로 칼라이미오(Kalaimyo)까지 이동해서 그곳에서 하루 자고,

그 다음 날 5월 2일(목) 새벽에 Chin State를 향해서 출발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종착지는 발룽(Valung)이라는 곳인데,그곳에서 28개 교회로부터 오는 목회자, 장로 그리고 성도들이 모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담목사는 목, 금, 토, 주일까지 4일 동안 매일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저녁 3시간 집회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Chin State 집회를 마치면, 칼라이미오로 하산해서

5월 6일(월) 오전에 버스를 타고 양곤까지 24시간 동안 내려오는 일정이라고 했습니다.


벌써부터 몸이 재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강행군이 될 6일 동안의 사역을 위해서오늘은 아무 일정도 잡지 않고 체력 비축과 집회 준비를 위해서 깊은 휴식과 묵상으로 하루를 보냈습니다.그런데 오후 2시 경에 아담목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기도제목을 내놓았습니다.Chin State 집회 준비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다 했는데,이제는 정말 특별 기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담목사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Chin State 집회가 끝난 이후에 그 어떤 문제가 발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칼라이미오 행정 당국에 숨김없이 저의 방문 목적을 신고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Chin State에 있는 Valung에서 28개 교회 목회자와 리더들을 위한 리더쉽 세미나를 개최하며, 저녁에는 부흥집회로 모이게 된다고 신고한 것입니다. 또한 강사 숙소 역시 호텔이 아니라 Chin State 현지인 성도 집에서 잘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신청서를 낸 것입니다. 미얀마 현행법으로는 99% 허가될 수 없는 신청이었습니다.

외국인은 허가 받은 호텔 외에 그 어떤 미얀마인 집에서도 잘 수 없도록 되어 있고, 외국인을 재워준 사람은 체포되어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집회 장소인 발룽에서 칼라이미오까지는 너무 멀어서 매일 왕복을 할 수 없기에 무모하지만 믿음으로 그와 같은 신청서를 제출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 칼라이미오 공항에 도착해서 이민국에서 재심사를 받을 때, 이미 제출한 신청서에 따라서 Chin State 집회 허가증과 현지인 집에서 잘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담목사의 말로는 Chin State 집회 허가증과 Chin 성도의 집에서 잘 수 있는 허가증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1962년 이후, 처음으로 있게 되는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5월 2일 목요일 새벽에 Chin State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다음 주 화요일(5월 7일)까지 그 어떤 소식도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Chin Sate에는 인터넷이 아니라 전기 시설이 아예 없는 곳이 많기 때문에 5일 동안 아무 연락을 드리지 못하게 됩니다. 만약 목요일에 제 메일이 여러분에게 전송이 된다면 그것은 Chin State 집회가 불허되어 칼라이미오에 발이 묶여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내일부터 다음 주까지 무소식으로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허가증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특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라는 인사로 선교통신 68호를 닫고 싶습니다. 여호와 닛시!

Rev. Joshua Hankap Yang



ALM 선교통신 69호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칼라이미오(Kalaymyo) 이민관
칼라이미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40석 경비행기 안에 외국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짐을 찾아서 바람처럼 공항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이민관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라고 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제 여권을 검사하더니 “관광 비자로 왔군요?”했습니다. “네.” “최종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Chin State에 있는 바룽(Valung)입니다.” “바룽이라구요?” “네.” 그는 내 여권을 딱 소리가 나도록 오른 손바닥에 치면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의 표정은 마치 한 건을 잡았다는 기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를 따라서 이민국 데스크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이민관은 내 여권을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습니다. 찌그러진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내 여권이 마치 도마 위에 올려진 처량한 생선처럼 보였습니다. 뒷방에서 이것을 어떻게 요리할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을 그 젊은 이민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마침내 아담이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손바닥만 한 공항에서 그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이민관이 아담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이민관은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내 여권을 주면서 가라고 했습니다. 놀란 저는 아담에게 “다 끝난 거야?”라고 했습니다. “아니요.” “아니요? .... 무슨 말이야?” “호텔에 가서 기다리랍니다,” “호텔?” “네.” "....." 공항 밖에서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투몽목사와 반갑게 재회를 했습니다. 지난번 칼라이미오 집회 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저를 섬겨주었던 투몽목사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멸치처럼 말라있었습니다. 호텔로 이동 중, 아담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한 뒤에 아담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잠시 후에 이민국에서 최고 높은 사람이 호텥로 와서 목사님을 직접 심사한다고 합니다.” “호텔에서?” “네. 우리에게는 더 잘 된 일입니다.”

칼라이미오 호텔은 한국에 있는 시골 여관보다 못합니다. 213호.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뒤집어 진채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귀뚜라미들은 여기저기에서 더듬이를 흔들며 벽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방뿐만 아니라 복도에서, 계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귀뚜라미 군대였습니다. 천장과 유리창에는 도마뱀들이 큰 눈을 빙빙 돌리며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30분 후, 이민관이 도착했습니다. 지난번 칼라이미오를 방문했을 때 공항에서 저를 심사했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는 Chin Sate를 방문하는 일보다 그곳에서 자는 문제를 놓고 힘든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Chin State 안에 들어간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관광 비자로 온 방문자가 미얀마인 집에서 자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Chin State 공무원들이 어떻게 저를 처리할지 그것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게 있는 특별 신분증(인터넷에 밝힐 수 없는 신분증)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몇 번이고 앞뒤로 제 신분증을 확인했습니다.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정말로 저를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Kalaymyo의 권한은 Chin State보다 높습니다. 그래서 Chin State 공무원들에게 목사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통보하겠습니다. Chin State에 갔을 때 누가 와서 뭐라고 하면 목사님이 가지고 계시는 이 신분증만 제시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제가 지금 사무실로 돌아가서 모든 조치를 취해놓겠습니다.” 그는 나보다 더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Chin Sate 집회와 그곳에서 자는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었습니다.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Chin Stage Valung으로 가는 길
Chin State를 향해서 새벽에 출발을 했습니다. 38선에 세워진 철마가 다시 기적을 울리며 녹슨 바퀴를 움직이며 북을 향해서 출발하는 것처럼 흥분되었습니다. Chin State 주 경계선 검문소 가까이에 이르자, 아담목사는 운전수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좌석을 바꾸겠습니다.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할 때까지 양목사님은 뒤 좌석으로 옮긴 후 얼굴을 잠시만 숨기고 계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앞좌석으로 옮기고 다시 출발을 했습니다. 검문소 앞에 서자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손짓으로 창문을 열라고 했습니다. 차 안에는 모두 5명이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그 흔한 “Good morning!"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숨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차 안을 매서운 눈으로 훑어보더니 그 역시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손짓으로 ”통과!“라고 했습니다. 창문을 닫고 출발을 한 후, 약 50m 정도 갔을 때, 우리 모두는 ”Yes! 할렐루야!“하며 박수를 치며 소리쳤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Chin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칼라이미오에서 바룽(Valung)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2,000미터 높은 고지 위에 위치한 바룽까지 가는 동안 거의 단 한 번도 내리막길이 없었습니다. 마치 천국을 향해서 가는 것처럼 차는 줄기차게 고개를 높이 쳐들고 달렸습니다. 출발 몇 십 분 만에 칼라이미오는 이미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우리는 깊은 산악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Chin Sate는 말 그대로 Christian State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담에게 “Chin State는 Cross country 같다."고 했습니다. 약 1,000미터 고지를 통과하자 Chin Hill은 수많은 소나무 숲으로 바꿔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룽까지 가는 길 위에 세워진 수많은 십자가들의 수는 Chin Hill 숲 속에 있는 소나무보다 더 많아 보였습니다. 가파른 코너를 돌 때마다 어김없이 그곳에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길가에서 만나는 집집마다 거의 모든 집 앞에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집보다 더 큰 십자가도 있었는데, 너무 커서 아담에게 교회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냥 가정집이라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돌들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함께 동승했던 마태(Matthew)전도가 내려서 떨어진 돌을 치우면 다시 달렸습니다. 집회 시간은 오전 8시부터였지만, 이미 시계는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멈추고 말았습니다. 산사태가 일어나 길이 허물어져 불도저가 길을 다시 깎고 있었습니다. 감사했던 것은 그 엄청난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약 20분 후에 불도저 기사가 통과하라고 사인을 줘서 무사히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목적지 Valung에 도착했습니다. 기온은 영하처럼 내려갔고 온 몸이 움츠러 들었습니다. 입에서 입김이 훌훌 나왔습니다.

교회 넓은 마당에 도착하자 모여 있던 성도들이 춤을 추듯이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비행기 표가 있으면 언제든지 쉽게 올 수 있는 그런 쉬운 땅이 아니었기에,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쉬운 성도들이 아니었기에 그들뿐만 아니라 제 가슴도 큰 기쁨으로 넘쳤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교회 마당에는 대형 가마솥 3개가 걸려있었고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습니다. Valung교회 Lio목사는 큰 솥 주걱을 쥐고 나에게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무사히 도착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수 십 년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가마솥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엄청난 고기가 있었습니다. Lio목사는 “이번 집회를 위해서 소 한 마리와 돼지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름의 땅 Valung에서 하늘 잔치를 시작했습니다. 예배당으로부터 찬양을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한 자매가 교회 옆에 있는 종을 힘차게 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떨어진 폭탄 껍데기를 만든 종이라고 했습니다. Valung 골짜기, 골짜기에 하늘의 황금 종이 힘차게 퍼져가고 있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땡그랑.”

Rev. Joshua Hankap Yang



ALM 선교통신 70호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Chin State 교회와 성도들
Chin State 크리스천들은 미얀마 군부에 의해서 1962년부터 선교사의 출입이 전면 통제 된 고립의 땅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든든히 서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아비를 잃은 어린 고아처럼, 갑자기 목자를 잃은 어린 양처럼 그들은 깊은 산 중에 버려졌습니다. 쌀농사를 할 수 없어 쌀이 귀한 땅. 그래서 집집마다 천장에 많은 옥수수를 매달아 말리고 있었습니다. 옥수수는 긴 우기 때 중요한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주로 감자와 양배추를 재배해서 칼라이미오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어 하는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높은 하늘 가까이서 사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왜 Chin State로 보내셨는가?
바룽(Valung)은 큰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28개 교회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오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 바룽이 집회 장소로 결정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날 때마다 너무 추워서 모닥불 주변으로 모여들었는데, 그곳에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하나님이 나를 Chin Hill로 보내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들을 보냈을까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녁 집회 설교는 위로를 주제로 한 말씀을 준비했었지만 단 한 편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연약해진 그들의 신앙을 재정비케 하는 말씀들이 선포되었습니다. 선포되는 말씀까지 그들을 더 춥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포기가 없는 사람들
비는 멈추지 않고 내렸습니다. 점점 거센 바람까지 불기 시작했고, 기온은 영하로 곤두박질하고 있었습니다. 오전과 오후 집회는 28개 교회로부터 온 목회자와 장로들을 위한 리더쉽 세미나로 인도했습니다. 약 50명이 참석했습니다. 나는 양말과 운동화를 신고 강의를 했지만, 그들은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차가운 나무 의자에 앉아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송송 뚫린 교회 나무 바닥 사이로 발목을 잘라 버릴 것 같은 칼바람이 들어왔고, 깨진 유리창으로는 살을 자를 것 같은 시린 비바람이 들어왔습니다. 너무 추워지는 날씨 때문에 그들의 몸이 점점 오그라지는 것을 보고 강의를 중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가슴을 쩍 피면서 전혀 춥지 않으니 강의를 계속 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쉬지 않고 내렸던 비는 갈급했던 그들의 심령에 하나님이 내려주셨던 단비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4일 동안 쪽잠만 자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말씀 앞에 모였습니다.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화해
목회자들 중 두 번째 연장자인(64세) 한 목사님이 고백했습니다.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이 산에서 목회했습니다. 그동안 잘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리더쉽 세미나를 들으면서 목회자들 가운데 내가 가장 연약한 목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특별히 장로님들께 부끄럽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의 가슴을 몇 번씩 치면서 울었습니다. 그러자 장로님들이 “아닙니다. 저희 장로들에게 잘못이 많았습니다. 목사님이 저희들을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아름다운 화해를 시작으로 여러 목회자들이 함께 참석했던 장로님들과 화해의 포옹을 했습니다. 비바람이 더 거세지면서 양철지붕은 마치 수 백개 드럼이 동시에 내리치는 듯 한 엄청난 굉음을 쏟아냈지만, 제 귀에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내려와 그들의 화해를 축복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목회자들의 반란
토요일 오후까지 3일 동안 여섯 번의 리더쉽 강의를 마쳤습니다. 주일예배 인도를 위해서 목회자들과 장로님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리더쉽 강의를 마친 후 충격적인 광고가 있었습니다. 목사들 전원이 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광고였습니다. 리더쉽 세미나는 끝났지만 Valung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토요일 저녁 집회와 주일예배 집회가 남아있었습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교회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반란(?)은 주일예배까지 참석해서 마지막까지 은혜를 받겠다는 이유였습니다. 각 교회 장로님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는 자신들이 인도할테니 목사님들은 Valung에 남아 마지막까지 은혜를 받고 오라고 하면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동안 많은 집회를 인도했지만, 목회자 전원이 목회지 이탈 사고(?)를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이 각 교회로 떠나고 남은 모든 목회자들이 다시 모닥불 주변에 모였습니다. 모닥불 속에 감자를 넣어서 구웠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기뻐서 웃었습니다. 많이 많이 웃었습니다.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목회자 가슴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다시 내렸습니다. 그처럼 행복했던 빗소리는 다시 듣지 못할지 모릅니다.

성도들의 사랑
주일예배. 모든 목회자들이 함께 했던 마지막 집회였습니다. 예배 전 아담목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목사님이 베풀어 주시는 성찬을 갖고자 합니다. 준비할까요?”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들의 간절함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일예배였지만 3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제가 설교만 2시간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역시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주일 집회를 마칠 때까지 거센 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Chin Mission을 끝냈습니다.
예배 후, 마지막 점심을 먹으면서 아담목사에게 “이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내려가는 거지?”라고 했습니다. 아담목사는 점심 식사 후에 진짜 미션이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나를 당신들 집으로 초대해서 특별 기도를 받고 싶어 하는데 다 들어줄 수 없어서 특별히 필요한 몇 사람들만 뽑아 놓았으니 점심 먹고 가정 심방 목회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Chin Mission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6개월 동안 자리에 누워있는 26살 된 자매를 찾았습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지만, 네 살, 두 살 된 아들들이 아픈 엄마를 기댄 채 앉아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믿음에 관해서 말씀을 전하고 안수 기도를 하려고 했는데, 구지 일어나서 기도를 받겠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도와 그녀를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치료하심이 그녀에게 있기를 지금도 기도합니다. 그 다음은 양배추 밭으로, 감자 밭으로, 작은 양어장으로 그리고 여러 집으로 찾아가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공짜 기도를 받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받은 후, 한 자매는 호박 크기만 한 아보카도(과일)를 내놓았습니다. 한 장로는 토종 마늘 두 꾸러미를 내놓았습니다. 한 장로는 20년 동안 깊은 산에 갈 때마다 사용했다는 큰 칼을 내게 주었습니다. 한 성도는 큰 표주박을 주었습니다. 밭에 갈 때마다 사용했던 물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표주박을 선물로 주는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너무 갈급한 성도들입니다. 꼭 다시 오셔서 갈급한 우리들에게 또 생명수를 부어달라는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자매는 한 봉투를 내놓았습니다. “목사님이 하시는 한센 선교에 써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 봉투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만난 자매도 한 봉투를 주었습니다. 봉투를 꺼내기 전부터 그녀는 울고 있었습니다. “시간 시간마다 주신 메시지를 통해서 너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꼭 다시 와주세요. 더 많이 드리고 싶은데....”하면서 울음이 터져 더 말문을 잊지 못했습니다. Chin 성도들이 준 사랑이 너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감당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여러 곳에서 여러 분들로부터 많은 대접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Chin 성도들이 주었던 그 선물들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4일 동안 매일 하루 세끼 식사를 대접받았습니다. 한 끼 정도는 사양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새 밥을 지어서 주었고, 매 식사 때마다 닭을 새로 잡아 압력솥에 푸욱 삶아서 가장 부드러운 살만 골라서 내 앞에 내놓았습니다. 단 한 번도 아침에 남은 닭고기를 점심에 다시 먹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밥상에는 매일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닭 한 마리와 가장 신선한 야채들이 올라왔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그들은 저를 왕이 되게 했습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깊은 포옹을 했습니다. 그때 한 목사가 쉘폰을 높이 들면서 말했습니다. “양목사님, 지금 칼라이미오에는 비가 안 온다고 합니다.” 4일 동안 줄기차게 내렸던 비 때문에 나에게 몹시 미안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지금 칼라이미오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여기에 더 있고 싶은데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목사가 “그러세요!”하면서 제 가방을 덥석 잡더니 “그러면 지금 저와 함께 저희 교회로 가실까요?”라고 해서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주 아주 크게 크게 웃으면서.....


Rev. Joshua Hankap Yang

아시아 나사랑 선교회
Asia Leprosy Mission
www.LoveALM.com
Philippine Mobile: (63) 939-903-5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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